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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천운영
구름위집
2010. 6. 4. 15:49
소설가 천운영, 아버지가 입에 넣어주시던 삼합2009.09.08 18:03 | 요리 자료 모음 |
소설가 천운영은 음식을 잘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특히 자신의 집에서 삭힌 홍어로 삼합을 만들 대부분 9월과 10월에 잡혀 있어서 원고를 완성하느라 정신이 없다. 헌데, 거의 유일하게 소설가 천운영은 바쁘지 않았다. “원래는 바빠야 하는데, 계간지 장편 연재가 미뤄져서 조금 시간이 생겼어요. 소설가라는 직업 이 늘 써야 하는 입장이지만, 아무래도 마감이 닥쳐야 긴장해서 몰아 쓰게 돼요. 어쨌든 요즘 잠깐 ‘널널’해졌어요.” 기사를 써야 하는 입장에서는 그녀의 스케줄이 급작스럽게 떠버린 게 더없이 다행스런 일이었 지만 그녀에겐 좀 번거로운 일이 됐는지도 모르겠다. 삼복더위에 바쁘고 바쁜 작가들에게 전화 를 걸어 ‘요리를 만들어달라’고 말하는 게 애초 성사되기 힘든 요구였으니까. 아무튼 고맙다. 끼니 요리 잘한다고 소문난 여자. 소설가들 중에는 요리에 조예가 깊은 사람들이 많다. 왜 그런가? 물어보면, 글을 쓰다 보니 이런 저런 것에 관심이 많고, 그러다 보니 요리에도 깊은 관심을 갖게 되더라는 게 공통적으로 돌아온 대답. 아무튼 요리를 잘한다는 우리나라 작가들 중에서도 천운 영은 손가락 안에 든다. 왜 그런가? “요리를 워낙 좋아해요. 만드는 것도 좋아하지만 정성껏 만든 것을 누군가에게 준다는 사실이 더 좋아요. 우리 집에서는 제가 만들어놓은 음식으로 가끔 파티가 열려요. 오후 4시쯤 모여서 삼합이나 갈비찜을 먹으며 밤새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 모임에는 소설가 전성태나 은희경이 전속 멤버고, 그 외에도 그녀의 집에서 그녀의 요리를 경험한 선후배 작가들은 부지기수다. 그녀가 요리를 좋아하게 된 것은 집안 분위기 탓이 크다. 그녀의 고향은 서울이고 일곱 살 때 이사를 가서 학창시절을 보낸 곳은 인천이지만, 아버지의 고향은 고창이고 어머니의 고향은 순천이다. 거기에다 어머니가 음식에 도가 트인 분이었고, 할머니는 식탐이 많았으며, 아버지는 인부를 거느리고 공장을 했다. 워낙 부모님이 남도 출신인데다 음식 솜씨도 좋았으니 그녀가 음식에 조예가 깊어진 이유를 알아먹겠다. 그런데, 죽 열거한 가운데 아버지가 공장을 한 것이 요리와 무슨 상관일까…? “지금은 절반도 안 되지만, 예전에 한창 많을 때는 우리 집 공장 인부가 스무 명쯤 됐어요. 제가 엄마와 함께 그 사람들 식사를 준비했어요. 70년대 80년대 인부들이 대부분 시골에서 돈 벌려고 올라온 사람들이다 보니 우리 집에서 기숙을 했죠. 삼시 세 끼 밥을 해서 먹였습니다. 아버지의 신조와 어머니의 믿음은 ‘일하는 사람들이 잘 먹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투박한 밥상이었지만, 그게 참 맛있었어요. 돼지고기 툭툭 썰어넣은 김치찌개, 도가니가 넘치던 도가니탕, 그 외에 이것저것, 아무튼 북적북적했어요. 지금은 도가니가 비싸지만, 예전에는 정육점에 가면 그냥 줬거든요.” 집에 사람이 많으면 매일 잔치집이다. 꼭 공장을 하지 않더라도 예전에는 사람 많은 집이 많았 다. 세를 살아도 가족처럼 살았다. 살림살이야 지금보다 힘들었는지 모르지만, 사람 사는 맛은 당시가 훨씬 좋았다. “당시 사진을 보면, 완전 고봉밥이죠. 당시에는 김장도 엄청 많이 했어요. 한 500포기 정도. 젓갈도 모두 직접 담갔죠. 다른 것은 몰라도, 먹는 데에는 아쉬움이 없었어요. 한 번은 우리 집에서 일하던 오빠가 크게 성공해서 찾아왔어요. 그 오빠가 계속 강조하는 말이 ‘그때 정말 잘 먹고 일했다. 그게 계속 생각났다. 감사하다’ 그 말이었어요. 어머니가, 아버지가 다른 말보다 그 말에 너무 기분 좋아하시더라고요. 항상 먹는 걸 잘 먹이자, 집안 분위기가 그랬어요.” 천운영이 가장 잘하는 음식은 ‘갈비찜’(기름을 쫙 빼고, 전복과 함께 흐물흐물할 정도까지 익혀 만든 그녀의 갈비찜은 별미라는 소문이 자자하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삼합’이다. 삼합. 그중 홍어는 냄새도 있고 맛도 강해서 길이 들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환영받지 못하는 음식이고, 특히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는 기피 대상이다. 남도 출신 부모를 두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결혼도 안 한 여인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 ‘삼합’ 을 이야기한 것은 참으로 소신 있는 발언이었다. “몇 해 전 오빠 결혼식이 있었는데, 고창이 아니고 인천의 어느 교회였어요. 손님들에게 무엇을 대접할까 하다가, 삼합을 준비하기로 했죠. 결혼식 보름 전에 홍어를 삭히기 시작하고, 결혼식 이틀 전부터는 온 가족이 모여서 수십 마리 의 홍어를 쓸기 시작했어요. 그 일이 좀 고단하긴 했지만 잔칫날 아버지 고향 친구들이 삼합을 드시며 얼마나 즐거워하는지 정말 뿌듯하더라고요. 아버지가 허허 웃으시면서 커다란 홍어 덩어리를 내 입에 넣어주시기도 했어요. 정말 잔칫날이었죠.” 그런 게 있다. 강원도 잔칫상에는 꼭 문어가 올라와야 하고, 충청도 잔칫상에는 낙지가 올라와 야 하고, 전라도 잔칫상에는 홍어가 올라와야 한다는 말. 홍어는, 삼합은 남도 사람들에게 특별 한 음식이다. 전라도에서 길게 살아본 적은 없지만, 방학이면 늘 고창과 순창에서 보냈던 그녀 는 그 곳 사람들만큼이나 홍어를 좋아한다. “홍어는 삭히는 데 보름 정도 시간이 걸리잖아요. 이내 뚝딱 만드는 음식이 아니라, 얼마 전부 터 누군가를 위해 준비하는 음식이어서 좋아요. 그 기간 동안 대상을 생각하고, 그 대상이 먹 을 걸 생각하면 즐겁고…. 홍어는 그런 음식이어서 좋아요.” 홍어를 삭히면서 그걸 먹어줄 사람을 생각한다? 그렇게 듣고 보니 참 인간적인 음식이 아닐 수 없다. 그걸 대접받는 사람은 오랫동안 그녀를 생각할 것이다. 홍어는 일단 자극적인 냄새 에 익숙해지면 그 ‘쌉쌉한’ 맛 때문에 계속 그리워지는 음식이니까. 집에서 삭히지 않는 한 홍어는 꽤나 비싼 음식이다. 유명한 식당에 가면 5만 원짜리도 두 사람 먹기에 부족하고, 덜 유명한 식당에 가도 3만 원은 내야 한다. 국내산이 아니어도 그렇다. 삼합을 먹는 방법은 김치를 깔고, 고기를 얹고, 마지막에 홍어를 올린다. 물론, 다른 순서를 이야기하는 사람도 많다. 고기를 깔고, 홍어를 올리고, 묵은김치로 싸서 먹는다는 식으로. 역시, 물론, 정해진 절차가 있는 것은 아니다. “엄마랑 연안부두에 종종 가는데, 낙지 잘하는 집이 있어요. 봄에 꽃게 철이 되면 자연산 광어 나 우럭이 그물에 딸려 올라오는데, 워낙 단골이라 빨리 사가라고 전화가 걸려옵니다. 아무튼 그 집에서 홍어를 사다가 집에서 삭혀 먹기도 하고, 말려서 끓여 먹기도 하고, 한동안 잘 먹어 요. 홍어가 좋은 이유 중 또 하나는 요리가 간단하는 것. 홍어 삭히는 데 필요한 것은 시간뿐이라는 것. 그 지독한 냄새도 이내 적응이 된다는 것이에요.” 그녀는 언젠가 요리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집에 앉아서 쓰는 요리 칼럼이 아니라, 산이나 대나무, 강 등 소재를 정해서 취재를 다니고 거기 에 어울리는 음식 이야기를 쓰는 칼럼이었다. 여행을 요리만큼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니 그 칼럼 쓰는 동안은 무척이나 행복했다. “떠나는 것을 좋아해요. 가리지 않고 참 많이 다니죠. 가장 최근에 다녀온 여행은 엄마의 환갑 여행. 배를 타고 유럽을 도는 일정이었어요. 아버지는 함께 가지 않았어요. 엄마가 많이 좋아 하셨죠. 경비는 물론 제가 댔어요. 그래서 엄마한테는 딸이 있어야 하는 거예요.” 소설가로 살아가는 것은, 체질에만 맞는다면 참으로 매력적인 삶이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 여행을 떠날 수도 있고, 아니면 아예 몇 년을 낯선 땅에서 보낼 수도 있 다는 자유로운 삶도 그렇지만, 술에 취해 주정을 부려도 세상은 ‘작품을 쓰느라 힘들어서 그러 나 보다’ 인정해준다. 천운영도 술을 잘 마시지만, 주정은 없다. “소설가로 사는 것도 괜찮더라고요. 정말로 아무 일 안 하고 놀고 있어도 아버지가 ‘소설가니까 ~’ 이렇게 봐주세요.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대학 4학년 때였어요. 리포트를 제출 했는데, 교수님이 ‘너는 차라리 소설을 써라’ 그러시는 거예요. 그 말이 화살처럼 머리에 콱 박히더라고요. 그래서 소설 쓰기를 시작했죠.” 그녀의 첫 번째 전공은 신문방송. 기자가 되려고 했지만, 대학시절 공부보다 나라 걱정을 많이 하느라 학점이 부족해 일찌감치 꿈을 접었다. 대학을 졸업하고는 대학에 다시 들어가 문예창작 을 전공했다. 그 몇 년 동안 소설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사회에 나와서는 직원이 단 세 명, 1년에 두 권 정도 신간을 발표하는 아주 작은 출판사에 다녔 다. 워낙 분위기가 느슨하기도 하거니와, 사장님이 부처님 반토막 같은 분이어서 습작을 겸할 수 있는 여건이 자연스럽게 마련되었다. “새벽까지 술 마시다가 느지막이 출근을 하면, 당장 그만두라 내쫓아도 시원찮을 판에, 사장님 은 사우나 갔다 오라며 만 원짜리 지폐를 꺼내 주셨어요. 그 출판사 다니면서 두 편의 소설을 썼고, 그걸로 등단을 해서 소설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서두르기보다 느슨한 게 좋은 사람. 동료와 경쟁하기 싫은 사람. 사람들과 어우러져 술 한 잔 하는 게 좋은 사람. 소설은 귀신같이 잘 쓰지만, 논문 같은 형식의 글은 엉터리여서 아직까지 대학원 졸업장을 받지 못한 사람. 이처럼 천운영은 천성이 조직생활과 맞지 않는 사람이다. 그래서 여행을 그렇게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다시 음식. 그녀가 이른 아침 눈을 뜨자마자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냉장고에 가서 요리가 될 만한 재료들을 꺼내서 뚝딱뚝딱 ‘요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김치찌개든, 생선찌개든 아무것이나 상관없다. 그렇게 적당히 배가 차고 나야 잠에서 완전히 깨고 글쓰기를 시작한다. 집이 작업실 이니 삼시 세 끼를 집 안에서 해결하는 날도 많다. “식당 음식이 입에 안 맞기도 하지만, 집에서 음식을 해먹는 건 그냥 버릇인 것 같아요.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내 입맛에 맞춰서 해먹을 수 있으니까. 채식보다는 육식을 좋아해요.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채소는 비려서 못 먹겠어요.” 그녀가 육식을 즐긴다는 게 소문뿐인 줄 알았는데, 정말이었다. 아무튼 채식보다 육식을 즐겨한 다니 반갑다. 요즘은 웰빙이니 뭐니 해서 죄다 채식을 선호하지 않던가. 그 와중에 육식을 즐기는 사람들은 시골스런 사람이거나, 다른 말로 옛것을 그리워하는 사람 이거나, 삶에 솔직한 사람이거나, 뭐 그런 사람들이다. 천운영은 세 가지 모두 포함된다. 2000년에 신춘문예 당선과 함께 문단에 데뷔한 그녀는 지금까지 한 권의 장편(잘 가라 서커스, 2005)과 네 권의 소설집(바늘, 꿈, 명랑, 그녀의 눈물 사용 설명서)을 발표했다. 워낙 취재를 깊이 하고 써낸 소설들이라 내용이 무서울 정도로 ‘생생’하다. ‘잘 가라 서커스’를 쓸 때는 2년 동안 강원도 속초에서 중국 훈춘까지 열서너 시간 걸리는 뱃길 을 수차례 왕복했고, 단편 ‘숨’을 쓸 때에는 소의 골을 손질하는 여든 살 할머니와 손자의 이야 기를 제대로 쓰기 위해 마장동 축산장에 매일 출근하다시피 했다. 그녀가 계간지에 발표할 예정인 두 번째 장편은 ‘고문 기술자’ 이야기. 역시 수없이 뛰어다니고 수많은 자료를 모았다. “그는 왜 고문 기술자가 되었을까? 본인의 선택은 아니지 않았을까요?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다 보니, 그런 낙인이 찍힌 것인지도 모릅니다. 모델이 된 사람은 오랫동안 다락방에 숨어 지냈어요. 그 안에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정말 다락에서만 지냈을까? 그의 딸은 아빠를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무슨 이야기를 써도 사람 이야기가 되는 소설가 천운영. 그는 정말로 사람을 좋아한다. 대학 시절 그의 자취방은 돈이 많지 않은 친구들이나 선후배들이 먹을 게 없냐면서 머리 긁적이고 찾아오던 곳이었다. 그때도 누구든 반갑게 맞아주며 음식과 술을 차려주던 사람이었다. 음식을 만들어서 남들에게 나눠주는 걸 좋아하시던 할머니와 어머니의 모습 그대로 그녀는 지금도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만들고 있다. ●재료 홍어, 돼지고기, 묵은김치 ●만드는 법 1 홍어를 고른다. 삭히기 위한 홍어는 최대한 싱싱해야 한다. 2 기름기가 없는 종이에 홍어를 말아서 비닐봉지에 넣고 봉인한다. 최소한 1주일(여름 기준, 겨울은 보름, 오래 삭힐수록 맛이 깊다)은 삭혀야 하고, 껍질을 까지 않아야 제 맛이 난다. 3 홍어가 다 삭았으면 껍질을 벗기고 보기 좋게 썬다. 4 돼지고기를 삶는다. 기름기가 쫙 빠질 때까지 삶는다. 5 묵은김치를 꺼내 한입에 먹기 좋을 정도로 썬다. 반드시 들어가야 할 재료 홍어, 돼지고기, 묵은김치 / 여성조선 취재 최국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