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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12일 Facebook 첫 번째 이야기

구름위집 2012. 10. 12.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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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0년 10월 12일 유관순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했다. 유관순은 이화학당 재학 중 3·1운동이 일어나자 만세시위에 참가했다. 총독부 임시휴교령에 따라 학당이 휴교하자 유관순은 고향인 충청남도 천안으로 내려와 조인원·이백하 등과 함께 마을 사람들을 규합하기 시작했고, 4월 1일 아오내[竝川] 장날을 기해 독립만세시위를 벌였다. 이 사건으로 유관순의 부모는 피살당했으며 그는 오빠와 함께 체포되었다. 유관순은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을 언도받고 항소했으나 경성 복심법원에서 이를 기각당했다. 그는 재판장에게 자신의 투쟁이 정당하다는 것을 끝까지 항변하며 의자를 집어던졌고 그로 인해 법정모욕죄까지 가산되어 징역 7년형을 언도받았다. 일제의 모진 고문으로 몸이 상했으나 복역 중에도 독립만세를 고창했고, 이 때문에 더욱 혹독한 형벌을 당해 건강이 악화되어 17세의 나이로 옥사했다. 8·15해방 후 충청남도와 천안군의 협력으로 병천면에 유관순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 건립되었고,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브리태니커